퀴어 신학, 남성 수도승들의 생활을 성애적 관점서 해석

신학적 견해

퀴어 신학, 남성 수도승들의 생활을 성애적 관점서 해석

관리자2 0 3,405 2020.03.19 10:12

지난해 6월 퀴어행사반대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 앞에서 푯말을 들고 동성애를 옹호·조장하는 

퀴어문화 반대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이상원 교수의 성경이 경고하는 동성애 ⑩ 퀴어 신학의 이단성 5 <끝>



입력 : 2020-03-12 00:08/수정 : 2020-03-12 00:20



퀴어 신학은 로마 가톨릭 남성 수도승들의 독신 수도 생활을 성애적 관점에서 재해석함으로써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퀴어 신학은 남성 수도승들의 수도 생활을 하나님과 남성 수도승이 성애적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해석한다. 퀴어 신학의 논증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남성 수도승이 성애적 사랑을 한다면 이 사랑은 혼외정사가 되므로, 하나님도 혼외정사를 자유롭게 하시는 ‘바람둥이’ 같은 존재로 제시돼야 한다. 롤린(Gerard Laughlin)은 하나님의 영광을 묘사하는 표현들 가운데 한 부분인 에스겔 1장 27절의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라는 표현을 하나님의 남근(男根)이 강하게 발기한 모습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모습을 묘사한 에스겔 16장 8절의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처녀를 강간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둘째로, 하나님이 남근을 가지신 분이라면 하나님은 남성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애적 사랑의 상대역인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여성의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들이 된다. 남성 수도승들은 여성으로 성별을 전환해 남성이신 하나님과 동성 성관계에 들어간다. 남성 수도승들이 영적 수련을 통해 ‘하나님과의 합일’의 신비스러운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동성애적 성교에서 오르가슴에 도달해 희열을 맛보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 가톨릭의 독신 수도 생활은 금욕적 수련을 통해 수도자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자신 영혼의 영적 능력을 끌어올려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고자 하는 시도다. 물론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의 신비적이고 금욕적인 공로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성 수도승들의 수련을 하나님과의 성애로 해석하는 것은 이들의 수도 생활을 모독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과 남성 수도승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묘사되지만, 이 묘사는 하나님과 수도승 간의 영적이고 인격적인 교제를 설명하는 유비(類比)일 뿐, 성애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퀴어 신학은 성경의 결혼관을 동성혼으로 보고 이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장치로 해석한다. 그 근거는 두 가지다. 첫째, 퀴어 신학은 성경이 결혼을 유비로 이용해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엡 5:22~33)는 사실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들의 신랑인데, 성도들 가운데는 남자들도 있지 않은가. 남성이신 그리스도께서 남자 성도들과 결혼 관계에 들어가셨다면 그것이 바로 동성혼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러나 성경이 그리스도와 성도들과의 관계를 결혼에 비유한 것은 이성 간에 이루어지는 결혼이 아가페적 특성을 지니고 있고, 이 특성이 성도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특성 외에 다른 특성들은 이 유비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둘째로, 퀴어 신학은 접붙임(롬 11:23)과 입양(롬 8:23)의 비유를 악용해 동성혼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한다. 성경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신약시대의 교회 성도들의 관계를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가 접붙임을 받은 관계로 설명한다.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돌감람나무인 이방인 신자들은 ‘너무나 낯선’(queer) 자들인데 하나의 공동체 안으로 받아 들여졌다. 하나님은 자신과는 질이 다른 ‘낯선’(queer) 인간들을 자신의 자녀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이 원리에 따라 이성혼자들은 자신들의 눈에 낯선 것으로 보이는 동성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퀴어 신학은 강변한다.


퀴어 신학의 이 같은 해석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이방인 신자들이 혈통 상으로 유대인이 아닌 것은 그들의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주어진 조건으로서, 이방인 신자들이 자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인간이 하나님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인간들의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선천적 조건으로서 인간이 자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구조적인 조건들은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오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규범적 명령을 고의로 거스르는 죄이며, 인간이 의지로써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포용될 수 있는 ‘낯선 것’의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


지금까지 퀴어 신학의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주제들에 대해 살펴봤다. 퀴어 신학은 기독교의 중추적 구원과 삶의 원리들을 외설적이고 독신적(瀆神的)으로 해석하는 이단이다. 그뿐만 아니라 악마적인 성령훼방죄까지도 범하는 잘못된 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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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총신대 조직신학 교수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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