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에서 지난달 18일 ‘제1회 성과학 콜로키움’이 열리고 있다.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제공
입력 : 2020-02-07 18:02
질병관리본부가 최근 발표한 청소년 건강 행태 조사에 따르면 중·고생의 5.9%가 성관계를 경험했으며 이들의 첫 성관계 나이는 평균 13.6세였다. 성관계를 경험한 학생들이 많아지고 시기가 빨라졌고 해서, 아이들이 성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가졌거나 성숙해졌다고 여기면 안 된다.
아무리 성숙해 보이고 성숙한 척해도 의학적으로 청소년의 뇌는 미성숙한 발달 단계에 있다. 성관계의 의미와 책임, 위험성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청소년 성교육은 아이들의 뇌 발달 단계에 맞춰 과학적이고 성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성교육은 아이들에게 잡다한 성 정보를 알려주거나 아이들이 피임 전문가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성관계의 권리를 교육하는 것도 아니다.
성교육의 핵심은 인격 교육이다. 좋은 인격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해 건강한 가정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바람직한 기독교적 성교육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담아내야 한다.
① 가르쳐야 할 성(性)
성이란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성장해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들은 일부일처제라는 신성한 법규 안에서 결혼을 한다.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가 말한 ‘자신의 전체를 상대방에게 온전히 내어주는 성관계’를 통해 생명을 잉태하게 된다. 사랑으로 낳은 자녀를 부부가 노력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기르는 과정이 성이다. 그래서 성교육은 인격적인 사랑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다른 존재인지 가르치고, 그렇게 다른 이성 간에 지켜야 할 인격적인 예절을 알려주는 것이다. 성은 또 장차 자신을 지켜줄 가정의 기초가 된다. 올바른 배우자를 선택하는 법과 결혼을 통해 좋은 가정을 이루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자녀를 출산하는 과정, 자녀를 돌보는 부모만의 특권과 의무를 가르쳐 주는 것이 성교육이다.
② 성교육의 방식
성교육은 지식이나 정보 전달이 아닌 훈육(discipline) 과정이다. 훈육에는 수련이나 수양의 의미가 있다. 교육이라며 개방된 성에 관해 과다한 정보를 제공하면 미숙한 청소년들의 뇌에 혼란만 일으키게 된다. 포괄적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것도 가능하고 저런 것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교육하면 아이들을 좋은 인격체로 성장시킬 수 없다.
금지할 것에 대해 명확하고 권위 있게 가르쳐야 한다. 훈육할 때 ‘안 돼’라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긍정의 대답임을 알려줘야 한다. 긍정적 훈육은 자제(self-control)를 배우게 한다. 감정 관리 능력을 키워주고 결과를 생각해 현명하게 선택하는 힘을 길러준다.
비윤리적인 성관계나 의학적으로 건강을 해치는 성은 피해야 한다고 명확히 가르쳐야 한다. 특히 가르치는 이가 스스로 본이 되는 훈육은 더욱 효과적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아이들을 장차 부도덕한 성적 행동(혼전, 혼외 성관계)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이들이 결혼한 후 최상의 가정환경과 부부간의 온전한 신뢰라는 큰 상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③ 성관계의 모범답안
바로 순결이다. 순결은 단순한 절제나 금욕이 아니다. 성적으로 순결한 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투자요,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인내하며 순결을 가꾸는 과정 자체가 연인에게 믿음을 더해주고 서로의 매력을 높여준다.
사랑을 확인하자는 꼬임으로 혼전 성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 ‘다른 커플들이 다들 하니까 우리도 성관계를 갖자’는 거짓말에 속으면 안 된다. 혼전 성관계는 이혼 위험을 증가시킨다. 청소년기의 성관계는 훨씬 더 위험하다. 성인이 돼 혼전 성관계를 가진 경우보다 이혼 위험이 2배 높다.
좋은 성교육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순결을 지키는 데 사용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자기 몸이니 자기 책임하에 성관계를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성적 호기심과 쾌락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이 건강할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 건강하게 이성 교제를 하며 순결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가르쳐야 한다.
혹자는 성적으로 개방된 시대이니 이에 맞는 성교육을 하자고 한다. 실효성 없는 성 윤리나 순결 교육보다 안전한 성관계를 더 가르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많은 피임법이나 성병을 피하는 법이 청소년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진 못한다.
낙태가 마치 권리인 양 가르쳐 온 ‘성적 자기결정권’ 교육은 잘못된 성교육이다. 온 세상이 성에 대한 기준을 잃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도 못 할 뿐 아니라, 비정상이라는 말조차 못 하도록 입을 막으려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모범 답안을 알려줘야 한다. 생명력 넘치는 성의 신비를 결혼 후에 누리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성(性)적으로 풍요로움과 자유를 누리는 기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녀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심어 주셨다. 이 힘을 일깨워 주고 건강한 성을 꿈꾸도록 해줘야 한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문지호 출판팀장 (한국성과학연구협회)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