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의 Engagement 15] 동성애 반대 이유
동성애 성향은 악하지 않고 행위만 악하다는 주장, 죄의 성향 악하지 않고 죄적 행위만 악하다는 소리
오늘날 전 세계는 동성애라는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는 복음주의권의 지속적인 반대와 합법화 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법원은 동성애자들 간의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했다. 그것이 2015년 6월 26일이었다.
하지만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미국 내에서 성경적, 전통적 가치를 지지하는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그 결과 미 연방대법원 판사들 다수가 보수적인 인물들로 채워졌다.
비록 이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취소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어떻든 동성애를 반대하는 미국 복음주의권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사회 속에서, 복음과 진리를 지켜야 하는 힘든 싸움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내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원하는 세력은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이 입장에 서있는 일부 신학자들은 동성애가 죄가 아니며, 교회는 동성애자에 대한 회개의 요구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비성경적 주장을 쏟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복음주의권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이해와 확인 위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엡 4:15)'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사랑의 이름으로 진리를 외면하고 왜곡하는 것도 죄이며, 진리의 이름으로 사랑을 무시하고 희생시키는 것도 죄악이다. 우리는 양면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동성애와 관련된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죄이다.
성경은 동성애를 분명하게 죄로 규정한다(레 18:22, 롬 1:26-27). 일부 신학자들이 동성애적 성향과 동성애적 행위를 분리하면서 동성애적 성향을 악한 것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자의적 구별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죄의 성향은 악한 것이 아니다. 다만 죄된 행위만이 악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과연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가? 절대 아니다. 성경은 우리 안에 있는 죄성도 악한 것이며, 그 죄성이 드러나는 죄된 행위도 악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동성애적 성향도 악한 것이며, 동성애적 행위도 악한 것이다.
둘째, 성경은 동성애적 성향이나 행위 모두 악한 것이기에, 사람이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에 대하여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 주장 역시 언어도단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 모두는 죄성을 타고 났기에 죄인이며, 그 죄성을 따라 살고 행동하기에 죄인이라고 가르친다. 동성애적 성향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든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했든, 그것이 죄악스러운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셋째, 성경은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동성애적 행위로 범죄한 사람도,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면 죄 사함과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크게 보아 동성애는 십계명 중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영원한 윤리적 규범을 어기는 죄악이다.
여기서 간음이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하나님이 규정하신 총체적인 성윤리에 반하는 모든 것이다. 그것은 음란한 마음과 욕정, 음란한 말, 혼전성교, 외도, 포르노, 동성애, 양성애, 수간, 강간, 성추행, 성희롱 등을 포함한다.
간음죄를 범한 자가 회개하고 돌이킬 때, 주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신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동성애자가 회개하고 돌이킬 때 반드시 그를 사하시고 받아주실 것이다.
그리고 죄로부터 회개하고 돌아선 우리를 점진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성화시켜 가시듯, 동성애로부터 회개하고 돌아선 사람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가실 것이다. 이 진리에 대해서는 한치의 의심도, 한 치의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동성애에 대한 진리를 말했다. 그렇다면 사랑으로 이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우리가 이 진리를 믿고, 가르치고, 선포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향하여 가지셨던 태도를 닮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첫째, 예수님은 거의 모든 죄인들을 사랑으로 용납하셨다.
창녀들을 용납하셨고, 세리를 불러 당신의 제자로 삼으셨으며, 열심당원으로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도 불러서 당신의 친구로 삼으셨다. 그 결과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눅 7:34)'라는 별명을 얻으셨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만일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 기간에 동성애자를 만나셨더라도, 주님은 그들을 용납하셨을 것이다.
만일 회개하지 않고 그것에 머물러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는 영원한 불못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에누리 없이 말하고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고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일부 신학자들과 윤리학자들은 동성애적 성향이 후천적으로 습득되기보다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기에, 죄악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엡 4:15)'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사랑의 이름으로 진리를 외면하고 왜곡하는 것도 죄이며, 진리의 이름으로 사랑을 무시하고 희생시키는 것도 죄악이다. 우리는 양면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동성애와 관련된 진리는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죄이다.
성경은 동성애를 분명하게 죄로 규정한다(레 18:22, 롬 1:26-27). 일부 신학자들이 동성애적 성향과 동성애적 행위를 분리하면서 동성애적 성향을 악한 것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자의적 구별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죄의 성향은 악한 것이 아니다. 다만 죄된 행위만이 악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과연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가? 절대 아니다.
그들을 불러 친구로 삼기도 하시고, 당신의 제자로 삼기도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동성애자들을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태도, 즉 호모포비아 (homophobia)를 승인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둘째,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용납하시고 품으셨다는 것이 그들에 대한 회개의 요구까지도 포기하셨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님이 죄인들을 용납하시고 품으신 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목적 때문이지, 그들이 그들을 죄의 상태에서 영원히 머물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죄인들에 대한 사랑을 일관되게 견지하셨지만 동시에, 그들의 회개와 변화에 대한 촉구를 일관되게 견지하셨다. 우리는 이점을 결코 간과하거나 놓쳐서는 안 된다.
셋째,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주님께서 일관되게 진노와 경고의 태도를 취하신 대상은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사두개인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들이 거짓 선지자들, 거짓 교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사랑도 없었고, 진리도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자기 마음대로 왜곡했으며, 죄인들에 대한 경멸과 혐오로 가득차 있었다.
겉으로는 사랑과 예절로 경건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모든 악한 것들로 가득찬 위선자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주님의 진노와 경고는 '독사의 자식들아(마 12:34), 회칠한 무덤들아(마 23:27),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격(마 15:14)' 등과 같이 매우 강도높은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우리는 이런 거짓 종교 지도자들을 경계하고, 강도높게 경고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동성애를 반대하고, 동성애적 성향과 행위 모두를 죄라고 지적하는 이유는 혐오와 배제의 의지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동성애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진리를 진리로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성욱 박사
美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저서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 <정성욱 교수와 존 칼빈의 대화(이상 부흥과개혁사)>, <한국교회 이렇게 변해야 산다(큐리오스북스)>, <밝고 행복한 종말론(눈출판그룹)>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