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로 동성애 논란이 불거진 지 10년, 한국 대중문화에서 성 소수자 캐릭터의 등장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동성애가 대중문화의 메인스트림(주류)에 들어오면서 기독교계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보다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장 여자'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남자아이처럼 보이고 싶은 소녀의 성장담을 다룬 영화 <톰보이>, 성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 <아웃>(Out). (사진제공=MBC, 블루라벨픽쳐스, 월트디즈니)
우회적 표현을 넘어 극중 주인공까지
월트디즈니의 자회사 픽사 스튜디오가 지난달 성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을 출시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단편 애니메이션 <아웃>(Out) 남성 동성애자인 주인공 '그렉'의 커밍아웃(성 소수자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공개하는 행위)을 소재로 다룬다.
픽사 스튜디오를 비롯해 월트디즈니는 그동안 <토이 스토리>, <온워드> 등 여러 애니메이션을 통해 성 소수자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하지만 성 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동성애라는 주제를 다룬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대중문화 속 동성애도 방식을 진화하며 저변을 확대해왔다. 과거엔 주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과 같이 '남장 여자' 캐릭터를 등장시켜 동성애 코드를 가미시키거나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처럼 운명, 환생·윤회라는 소재로 동성애를 우회적으로 비호했다. 주변 인물로 등장하며 다양성의 한 요소로 편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워 다루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는 주인공 김은주(추자현 분)의 남편 윤태형(김태훈 분)이 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드라마 <야식남녀>에서는 주인공 박진성(정일우 분)을 둘러싼 삼각 로맨스에 성 소수자 강태완(이학주 분)이 등장한다. 올해 초 큰 사랑을 받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도 트랜스젠더 캐릭터가 화제에 올랐다.
영화 역시 주목받고 있다.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셀린 시아마 감독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사로잡았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열풍에 힘입어 뒤늦게 개봉한 <톰보이> 역시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작품에서 동성애는 한 인간으로서 겪는 '사랑'과 '성장'이라는 요소로 다뤄진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동성애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소재가 아니라는 의미다.
건강한 성 담론과 분별력 키워야
동성애가 대중문화에 자연스럽게 편입되고 친숙해지면서 우려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동성애를 다룬 대중문화에 자주 접하게 되면서 도덕적 상대주의가 만연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필름포럼 성현 대표는 "윤리적이거나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한 영역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야기하려는 순간 자칫 굉장히 편협한 사람이 되거나 고집스러운 사람이 된다"며 "자기 입장이나 주장을 표명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이태원 발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블랙 수면방’을 예로 들었다. 성 대표는 "(블랙수면방) 찬반을 떠나서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퇴폐적인 문화"라며 "이것을 거론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는 ‘인권’ 프레임이라는 상대주의가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상대주의에 대한 우려는 <아웃>이 출시된다는 소식을 접한 일부 학부모에게도 나타났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김수진(여·42) 씨는 "친구 엄마들과 모임 중에 동성애를 다룬 애니메이션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딸이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지만 이런 걸 나서서 밝히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토로했다.
문화선교연구원 백광훈 원장은 소프트파워(문화·예술 등을 앞세워 행동을 바꾸거나 저지할 힘)를 강조했다. 특히 동성애를 미화하거나 낭만적 프레임으로만 그려내면서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 원장은 "실제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은 드라마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며 "동성애 문제가 가진 명암이 있는데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부분을 솔직하게 다뤄주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독교계가 동성애에 대한 이분법적 담론보다는 건강한 성 담론에 대해 논의할 때라고 조언했다.
백 원장은 "건강한 성과 가족에 관련된 긍정적인 담론을 제시하면서 이 문제가 함께 다뤄질 때 청소년들에게 사회 속에서 건강한 성과 가정, 기독교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 대표 역시 건강한 분별력과 선한 영향력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 대표는 "(문화를 접하는) 특히 청소년에게 힘을 길러주지 않으면 정보 자체의 우열이나 진위를 가리기가 어렵다"며 "건강한 분별력과 선한 영향력에 대해 충분히 훈련하고 토론하고 서로 대조해가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