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연방대법원 “낙태권은 여성 사생활 보호 권리”
▶ 태아 자궁밖 생존 가능 전까지는 낙태 허용…1992년 판결서 재확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 2일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에서 낙태 찬성 및 낙태 반대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로이터=사진제공]
연방대법원이 반세기 동안 유지된 낙태권 보장 판결을 폐기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와 파장이 일고 있다.
낙태는 미국 사회의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로 개인의 자유와 생명 존중이라는 가치, 진보·보수, 종교적 신념 등이 맞물려 민감한 이슈였다.
현재 미국에서는 임신 6개월 이전까지 낙태는 사실상 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는 바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결에 따른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낙태에 관한 헌법상의 권리를 보장한 기념비적인 판결로 여겨진다.
1971년 텍사스주에서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한 여성이 낙태 수술을 거부당하자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노마 매코비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썼다. '헨리 웨이드'라는 이름의 텍사스주 댈러스 카운티 지방검사가 사건을 맡으면서 이 사건은 '로 대 웨이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방대법원은 1973년 표결에서 7대 2로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수정헌법 제14조에 명시된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며 이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태아가 산모의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 여성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임신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임신 약 28주차가 기준이 됐다. 이후 의학의 발전으로 현재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약 23∼24주차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연방대법원은 여러차례 낙태에 관한 소송을 맡았으며, 1992년 '케이시 사건' 등을 통해 1973년의 판결을 재확인했다.
당시 로버트 케이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의 낙태 제한 규정에 반발해 낙태를 찬성하는 지역 단체가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이 가능할 때까지 임신을 중단할 헌법상 권리가 있다는 1973년의 핵심 원칙을 확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미국인 다수가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해 연방대법원이 임신 15주 이후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의 법률 심리에 들어가면서 다시 논쟁이 불붙었다.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미시시피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낙태 시술소가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소송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것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보수 성향의 대법관 3명이 투입되면서 연방대법원이 보수 우위로 재편된 후 처음 심리하게 된 사건으로 더욱 관심을 끌었다.
낙태권리 옹호 단체인 구트마허 연구소에 따르면 미 50개주 중 31개주에서 낙태 금지 법안이 발의됐다. 이 가운데 애리조나, 아이다호, 와이오밍, 플로리다, 켄터키, 오클라호마, 웨스트버지니아 등 7개 주에서 의회 승인을 받았으며, 이 중 웨스트버지니아를 제외한 6개 주에서는 법률로 제정됐다.
대체로 공화당이 주지사로 있거나 주의회 과반을 차지하는 곳이다.
대표적으로 텍사스주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임신 6주 이후부터 낙태 시술을 사실상 전면 금지한 이른바 '심장 박동법'을 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