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동성혼개헌반대전국교수연합이 2017년 12월 서울 국회에서 개최한 ‘여성가족부 성평등정책 적법한가’ 포럼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음선필 홍익대 교수(앞줄 왼쪽 네 번째)는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은 사회적 성, 즉 젠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기존의 양성이 아닌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다른 성의 존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적지향’ 포함 국가인권위법이 대표적… 헌법에 부합하는지 살펴야
<13> 법 체계에 스며든 젠더 평등
입력 : 2020-01-14 00:05/수정 : 2020-01-14 00:22
양성평등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 젠더 평등은 성적지향 및 젠더 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를 포함해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평등까지도 요구한다. 젠더 평등은 종래 ‘성평등’으로 번역됨으로써 양성평등과 혼동되곤 했다. 그러나 양성평등과 젠더 평등은 엄연히 구별해야 한다.
여성발전기본법이 2014년 5월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된 이래, 양성평등은 한국 법체계에서 중요한 법률용어로 정착됐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양성평등이란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및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모든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을 말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법체계에 젠더 평등이 스며들고 있다. 젠더 평등을 주장하는 자들은 남성, 여성이라는 젠더 이분법(gender binary)을 철저히 부정하며 양성평등의 개념을 의식적으로 거부한다.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생물학적 성(sex) 대신에 나중에 사회적으로 다양하게 형성된다는 젠더(gender) 개념을 내세우며 성에 따른 구별을 거부하고 성해체를 주창한다. 나아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의 권리를 인권으로 보호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른바 ‘욕야카르타(족자카르타) 원칙’을 들고 있다.
2006년 11월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에서 제정된 욕야카르타 원칙은 아무런 법적 대표성을 갖지 않은, 국제 NGO와 국제인권법 관련 연구자 29명이 모여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 관련 이슈에 대해 국제인권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를 정리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한 기준을 원칙이라 부르며 나름대로 법적 권위를 부여하려고 했다.
이 중에서 젠더 평등과 관련해 특히 주목할 것은 제2원칙(평등과 차별금지의 권리)이다. 제2원칙은 “성적지향 및 젠더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의 금지 원칙이 헌법이나 다른 적합한 법규에 명시돼 있지 않다면, 법 개정이나 해석을 통해 이 원칙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고 이 원칙이 효과적으로 실현되도록 보장”하는 것을 국가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즉 국가가 입법이나 법해석을 통해 젠더 평등을 확립하고 이를 실효성 있게 보장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욕야카르타 원칙은 국제인권법으로 구속력을 가진 게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이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국 법체계에 이런 규정들이 이미 들어와 있다는 점은 더 심각한 문제다.
현행 법체계에서 젠더 평등과 관련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평등’ ‘성소수자’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2019년 12월 현재 성적지향을 차별금지사유로 명시하는 법률은 국가인권위원회법, 형집행법, 군형집행법 3건이다. 법무부령으로 인권보호수사규칙이 있고 조례로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서울시어린이·청소년인권조례 등 11건이 있다. 성별정체성을 명시하는 규정은 서울시학생인권조례 등에서 발견된다.
성평등을 조례 명칭으로 사용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서울 광주 경기도 등이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에선 ‘양성평등 기본조례’라는 명칭을 갖고 있으나 이들 지자체는 의도적으로 ‘성평등 기본조례’라는 명칭을 택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명시하는 규정 역시 조례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 법체계에 젠더 평등 관련 규정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그 숫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조례에 이런 규정들이 많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중에는 병역자원 관리, 가족관계 등록, 교정시설 수용자 관리 등과 관련해 부득이하게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개인이 선택한 성적 취향 및 젠더 정체성이나 이에 따른 생활양식을 권리로서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된다.
가장 주목할 법률은 바로 국가인권위법이다. 국가인권위법은 국내 최초로 평등권침해 차별사유로 성적지향을 포함했다. 그 결과 국가인권위법은 동성애자를 보호하는 대표적 법률로 인식됐으며 국가인권위는 동성애 옹호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인권위 권고에 따라, 청소년유해 매체물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이 삭제됐다. 국가인권위는 성적지향을 차별사유로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고 동성애를 금지한 군형법 조항 폐지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동성애와 에이즈 문제에 관한 보도를 사실상 제한하는 ‘인권보도준칙’을 한국기자협회와 만들었다. 이뿐 아니라 퀴어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그 행사를 후원·지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젠더 평등이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한 ‘실질적 젠더 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젠더 평등을 추구하려는 입법과 정책이 헌법을 비롯한 현행 법질서에 과연 부합하는지를 검토하는 게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음선필 교수(홍익대 법대)
약력=서울대 법대 졸업, 법학박사. 한국입법학회 회장, 한국헌법학회 부회장, 한국공법학회 부회장 역임. 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문위원, 국회입법지원위원, 법제처 법제자문관.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