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커밍아웃과 엄마의 절망…하나님을 만나다

사회적 영향

아들의 커밍아웃과 엄마의 절망…하나님을 만나다

IdealAdventure 0 247 05.11 08:32

아들의 커밍아웃과 엄마의 절망…하나님을 만나다

▶ ‘다시 집으로’의 공동 저자 아들 크리스토퍼 위안과 어머니 안젤라 위안의 모습.

다시 집으로(1)

미국의 중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치의과대학원에 다니며 촉망받던 한 남자가 동성애와 마약에 빠져 인생의 극단으로 치닫다가 하나님을 만나 회복된다. 그의 뒤에는 아들로 인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단을 앞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다. 동성애, 마약, 자살, 가정의 붕괴. 이 세대의 모든 문제를 담고 있는 한 가족 안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증거한 크리스토퍼 위안, 안젤라 위안의 수기 ‘다시 집으로’(대성출판사, 2017)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안젤라, “절망의 끝에서 한 줄기 빛”

시카고에 터를 잡은 지 24년이 지났다. 그날은 둘째 아들 크리스토퍼가 집에 온 날이었다. 그 아이는 지난 가을 시카고에서 켄터키 루이빌의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편입해 3학년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 1년 후에는 남편과 함께 가업을 이어 부자가 나란히 새로 마련한 치과 건물에서 일할 예정이었다. 식구가 한데 모여 일하며 같이 사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열망했다.


그러나 그날 밤, 크리스는 우리 부부에게 커밍아웃(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했다. 내 아들이 게이이고, 고칠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망연자실했다. 남편과 나 역시 깊은 골이 있었다. 우리는 1964년 미국으로 건너와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러나 아들의 커밍아웃으로 평소 꿈꿔온 아름다운 가정은 물거품이 됐다. 더 이상 살 소망이 없었다.


다음날 목회자를 만났지만 아무 위로도 받을 수 없었다. 그에게서 받은 작은 책자 하나를 들고 나는 곧장 기차역으로 향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기차 안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콜린 쿡이 쓴 ‘동성애자에게도 문이 열려있을까?’(1985)라는 그 책에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 심지어 동성애자까지도 그들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쓰여 있었다. 책을 읽을수록 그 모든 말이 마치 내게 하는 말처럼 보였다.


그 길로 나는 책자 뒤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고, 도와줄 사람을 만나 일대일 양육을 받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남편은 나를 찾지 않았다. 성경을 보고 예배를 드리며 시간을 보낸 후 6주 만에 시카고로 돌아갔을 때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안방 샤워실을 기도실로 만들고 말씀읽기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얼마 후 남편과 나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남편도 복음에 마음을 열고 우리 사이의 깊은 갈등의 뿌리를 하나님 앞에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들은 여전히 그 세계에 있었지만 내 아들의 미래도 우리처럼 밝기를 염원했다.


크리스토퍼, “나는 게이다" 

루이빌로 편입 후 게이 커뮤니티에서 1년간 활동하고 나니 부모님께 진실을 밝힐 준비가 되었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는 것이 통과의례다.


어머니는 동성애와 가족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다. 차라리 홀가분했다. 나는 루이빌로 돌아와 낮에는 치과대학 학생으로, 저녁에는 게이클럽의 인기 있는 바텐더로 이중생활을 했다. 게이 친구들이 진짜 내 가족이었고, 이곳이 진짜 내가 속한 곳이었다.


얼마 후 어머니가 루이빌로 찾아왔다. 종교라면 질색을 하던 어머니는 성경을 읽고 구세군 회관에서 얻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어머니의 권유에 못이겨 동성애에 ‘박식하다’는 사람을 만나거나 집회에 따라가기도 했다.


그들은 종교에 대해, 변화 가능성에 대해, 연구결과들에 대해 말했다. 내가 정말 노력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간청도, 내가 동원한 그 어떤 방법도 나를 바꾸지는 못했다.

중국인으로 태어났듯이, 나는 게이로 태어났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드신 것이다. 그해 스물세 번째 생일을 맞은 나는 케빈과 함께 살기 시작했지만, 16개월 만에 파국을 맞았다. 내 말을 들은 어머니는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12월 중순, 나는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새로 사귄 친구들과 클럽에 가서 처음 약물에 손을 댔다.


나는 학자금 대출금으로 대량의 마약을 사서 클럽과 동성애자 수천 명이 모이는 파티에서 마약 중개 사업을 벌였다. 사업은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붙임성 좋은 내 성격도 한몫했다. 그러는 사이 학교에 소홀해졌지만 상관없었다. 주말만 되면 나는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날아갔다.


대형 게이 파티에 가면 맞은편에서는 기독교 시위자들이 성경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회개하라! 동성애는 가증스러운 짓이다!” 기독교인들의 얼굴에 드러난 증오감을 보며 그들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나는 댄스무대 한가운데서 춤을 추며 소리쳤다. “여기가 천국이야!”<계속>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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