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물 보는 게 죄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요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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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물 보는 게 죄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요 ㅠ ㅠ”

관리자2 0 3,256 2020.05.03 08:48

김지연 한국가족보건협회 대표가 2018년 10월 대전의 한 고등학교 남학생들에게 

음란물 중독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지연 대표의 차세대를 위한 성경적 성교육 <7> 가정·교회서 음란물 예방교육을


입력 : 2020-04-29 23:07



성경적 성교육을 진행한 뒤 한 고등학생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오늘 강의를 듣고 음란물 시청이 성경적으로 명백히 죄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음란물 시청을 줄이기로 했어요.” “그래,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구나. 교회 다닌 지 얼마 안 됐나 보다.” “아니요. 저 3대째 모태신앙이에요. 하지만 학교나 교회, 집에서 음란물의 문제점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교회 가정 학교에서 음란물 시청의 문제점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음란물의 홍수 속에 그대로 노출된 게 요즘 세대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음란물의 범람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2002년 전국의 15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영상물 등급분류에 대한 제3차 국민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6.8%가 한국에서 유통되는 영상물의 음란성·폭력성·선정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18년이 지난 지금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해졌을 텐데 왜 교회와 가정에선 음란물 근절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일까.


경남의 한 교회에서 강연하던 중 “왜 아이들에게 음란물에 대해 지도를 하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답변은 이랬다.


첫 번째, 음란물을 탐닉하는 것이 죄라는 것쯤은 아이들이 당연히 분별하고 있을 거로 생각하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면서 더욱 가르칠 것을 말씀한다. 우리가 마땅한 것을 가르치지 않은 채 자녀들을 내버려 둔다면 ‘마땅히 행할 길을 배우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끝내버리고 말 것이다.


두 번째, 음란물 시청이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이미 일상화되고 보편화돼 교육을 해봤자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패배주의 역시 음란물에 대한 바른 지도를 못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음란물 예방 성교육을 실시해 본 바로는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심지어 일반 남자고등학교에서도 음란물 예방 교육을 겸한 성폭력 예방 교육을 다수했는데 한결같이 “감사하다, 음란물 시청 시간을 줄이겠다”는 학생들의 반응이 나왔다.


물론 음란물 예방 강의를 한답시고 무조건 끊으라는 메시지만 반복하거나 합리적인 통계나 연구결과의 제시 없이 막연하게 음란물을 보면 인간성 망친다는 식으로 교육하면 역효과를 가져온다.


특히 교회에서 교육할 때 성경 말씀을 정죄의 도구로 휘두르며 아이들을 겁박해 회개 촉구를 간과해 버린다.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음란물 끊기 교육을 한다면 자칫 율법적이고 정죄적인 하나님으로 각인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성경적 성교육일수록 정신승리를 강요하는 교육이 아닌 전문가다운 강의가 돼야 한다.


세 번째, ‘양육자인 어른도 음란물을 즐기는데 자녀들에게 음란물을 보는 것이 죄라고 어떻게 교육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자책하며 교육을 포기하는 경우다. ‘완벽한 양육자가 아닌 나는 아이들 훈육을 차라리 남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무의식적 무력감이 기독교인 양육자에게 스며든 것이다. 그런 양육자의 자녀는 오히려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우리가 완벽하고 죄가 없어서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듯이 완벽하고 죄가 없어서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거짓말은 죄야’라고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이 “나는 거짓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나는 거짓말을 한 사람들보다 우월해”라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거짓말은 하나님께서 죄로 보시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거짓말이라는 죄를 범했다면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원리로 “도둑질은 죄야”라고 교육할 땐 “나는 도둑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라든가 “나는 도둑질을 한 사람이 아니므로 그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해”라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도둑질은 주님 보시기에 죄이며 도둑질하지 않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음란물을 보는 것은 죄야”라고 교육할 때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나는 음란물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양육자야” “음란물을 본 너보다 난 우월해”라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음란물 예방 교육의 길이다.


완벽한 양육자만이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양육자인 우리는 완벽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도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할 뿐인 우리에게, 실수와 허점투성이인 우리에게 자녀들을 말씀으로 훈육할 권세를 주셨다.(신 6:4~9)


이 죄악의 쓰나미가 미디어를 통해 덮쳐오는 이때 우리가 쓸데없는 위축감 속에 빠질 이유가 없다. 기독교 양육자들이 어깨를 쫙 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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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대표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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